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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깨창 3편] 진화론의 뿌리를 알게된다면? (신학도였던 다윈도 진화론의 희생양)

진화론의 뿌리를 알게된다면? (신학도였던 다윈도 진화론의 희생양)

[고깨창 3편] 진화론의 뿌리를 알게된다면? (신학도였던 다윈도 진화론의 희생양)

정관념을 조과학 이야기


3. 진화론의 뿌리를 알게된다면? (신학도였던 다윈도 진화론의 희생양)

오늘날, 대중과학에서 진화론의 대명사는 ‘찰스 다윈(1809-1882)’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이름은 매우 상징적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대중적 명성에 비해서, 그가 생명에대하여 진화론적인 관점을 가지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가 자라나고 활동했던 18-19세기의 유럽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수많은 정치, 종교, 문화 및 사회적인 변화가 거듭되는 혼란의 시기였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이와 함께 기원에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성경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젊은 지구의 관점에 반대하여, 많은 도전적인 사고들이 생겨나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지질학 분야에서 진행되어 온 일련의 해석방식의 변화들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대한 역사적인 변천 과정은, 지질역사 학자인 몰텐슨박사(Terry Mortenson)의 저술(a)에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그에 따르면, 지질학 분야에서 지질 구조의 해석에 대한 변천 과정과, 그에 따른 성경적 해석에 끼친 영향은, 대표적인 관점의 변화에따라 아래의 몇 단계로 요약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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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성경적 ‘젊은 지구론’ 관점

초대교회 시대부터 대략 1750년대 이전까지 기독교적 가치관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는, 지구의 나이, 화석과 지질구조 등의 문제에 관해서 성경에 기초한 ‘노아 홍수의 대격변’(Catastrophe)의 결과로 이해되어 왔다. 현대지질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스테노(Nicolaus Steno, 1638–1686, 덴마크의 해부학자, 지질학자)는 ‘지층누중의 원리’(the principle of superposition)를 발표하였으며, 이에 따르면, 각 지층은 연속적으로, 또한 수평으로 형성되며, 아래의 층이 형성된 후 위층이 형성된다. 비록 스테노는 이러한 원리들을 바탕으로 성경적인 6000여년의 시간틀에서 지질구조를 이해하였으나, 그후에 이 원리(층서학, Stratigraphy)가 “진화론적 지질학의 버팀목”으로 탈바꿈되어 사용되어지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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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오랜 지구설’과 ‘다중격변설’의 대두

18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당시에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있던 일부 학자들은, 성경의 노아홍수에 기반한 격변적 지질 구조의 해석을 거부하고, 자연적인 현상에 의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지질 구조가 서서히 이루어졌다는 ‘오랜 지구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의 부폰(Comte de Buffon ,1707–1788)과 같은 학자는, “지구가 한때 뜨거운 액체상태의 구형과 같았으나, 수만년의 시간 동안 서서히 식어서 현재의 상태로 냉각되었다”는, 현재에도 널리 퍼져있는 생각을 주장하였다. 또한 천문학자 라플라스(Pierre Laplace, 1749–1827)는 그의 저서에서, “태양계는 한때, 뜨거운 회전하는 기체 구름과 같았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서서히 냉각되어 행성들의 형태로 압축되어 졌다”는 생각을 주장하기도 했다. 독일의 유명한 광물학자 버너(Abraham Werner, 1749–1817)는, “대부분의 지구의 지각은, 백만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에, 서서히 물러나가는 바닷물에 의하여 침전되어 이루어 졌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19세기의 많은 저명한 지질학자들이 그의 지도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고, 또한 그의 믿음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허턴(James Hutton, 1726–1797)은, “대륙들이 서서히 침식되어 바다로 들어갔으며, 이러한 침전물들이 서서히 지구의 열에 의해 굳어지고, 그 후에 융기과정을 거쳐 다시 대륙이 되는 점진적인 과정을 반복하는”, 오늘날의 지질학에 널리 퍼진 생각들을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시기에, 이러한 지질학적인 주장들에 부합하여, 프랑스의 자연주의자 라마르크(Jean Lamarck, 1744-1829)는, “오랜 세월에 걸쳐 생물이 서서히 진화된다는 생물학적인 진화 이론을 옹호하게 되었고”, 이와같이 지구가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지질학적인 생각들은 다른 분야에까지 파급되어지게 되었다.

한편으로, 프랑스의 큐비에(Georges Cuvier, 1768–1832, 해부학, 고생물학자) 등의 학자들은, 이와같이 점진적으로 천천히 진행되는 오랜 지구적 해석에 반하여, “여러 번의 홍수와 같은 격변적인 사건들이, 역시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되어 일어남으로써 오늘날의 지질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는, ‘다중격변설’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러한 대다수의 이론들은, 당시에 일부 관찰된 결과들을 근거로한, 가정들을 통해 얻어진 단순한 상상에의한 해석이었으며(과거의 초기정보 없이, 관측, 반복 또는 재현이 안되는 과거의 대상을 다루므로 실험과학의 대상이 아님), 따라서, 하나의 철학에 가까운 주관적 세계관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본론부에서 다루어질, 동위원소 연대분석 등의 대안적 방법이 등장하기 전의, 하나의 해석체계 이기도 하다, 물론 동위원소분석도 여러가지 임의의 가정들에 의존해야만 되기에 실험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의 시대적인 흐름은, 계속해서 ‘점진적인 오랜 지구’의 이론으로 기울어져 가기 시작했으며, 영국의 변호사이자 지질학자인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그의 저서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 1833)에서, 허턴(James Hutton)의 이론을 더욱 강화하여, “과거의 지질학적 기록들은 오늘날에 관찰되어지는 변화율로만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을 주장하였다”.

비록 그 이후에, 에거(Derek Ager, 1923–1993) 등이 이러한 해석 방식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반박하기도 하였으나, 동일과정설의 출현은, ‘오랜세월에 걸쳐 격변이 되풀이되었다’는 다중격변설과 함께, 결과적으로 성경의 전지구적인 노아홍수 사건에 기반한, 단일의 격변적인 해석을 불신하게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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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성경적 해석에 미친 영향

이와 같은 지질구조 해석의 변천과정에 대하여, 여러 성경적인 학자들은, “노아홍수에 근거한 해석이, 화석이나 지질구조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오랜 지구설을 반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동일과정설과 격변설이 아직 논쟁중인 가운데, 또 다른 크리스쳔들은 “재빨리 오랜 지구설을 성경에 접목시키려고 시도하였다”. 한편, 당시에는 자유주의 신학이 유럽교회에 팽배해 있었고, 영국과 북아메리카로 이전되고 있던 시기였음을 생각할 때, 이러한 인본주의적인, 성경의 재해석 시도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당시의 일부 저명한 신학자, 목회자들은 “오랜 지구 이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설교하거나(Thomas Chalmers, 1780–1847, 장로교목사), 창세기의 하루를 오랜 시간으로 해석해야 한다거나 (Day-age theory, George Stanley Faber , 1773–1854, 신학자), 노아의 홍수를 지역적 홍수로 재해석(John Fleming, 1785–1857, 장로교목사)하는 등”, 당시의 지질학적인 오랜 지구의 해석 추세에 발맞추어 성경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하게 되었다. 또한 당대의 저명한 설교가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도, 무비판적으로 오랜 지구이론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의 신학자 호지(Charles Hodge, 1779–1878)는,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오랜 간격이 있다거나 (Gap theory), 하루가 오랜 기간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등의 상상에 불과한 이론들을, 성경의 전통적인 6일 창조 해석과 타협하여 재해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프린스턴 신학교의 자유주의 신학화를 낳게 되었다”(a). 그리고 이러한 조류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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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마무리 하며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한번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사실은 무엇인가? 이와 같이 교회와 신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일과정설에 기반한 ‘오랜 지구’ 이론들이, 과연 실험과학적인 연구의 결과였던가? 이에대한 답은 이미 지질학의 해석체계의 변천사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실험과학의 연구결과에 기반한 과학적인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선행된’(c), 주관적이고 철학적 세계관에 불과한 것이었다. (초기 관측정보가 없기에, 실험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므로 주관적인 해석에 전적으로 의존해야함).

서두에서 언급된 찰스 다윈이, 그의 저서 ‘종의 기원(1859)’을 저술 하기 전에, 갈라파고스 군도를 여행하며 다양한 핀치새의 부리를 관찰하여 생물의 진화론을 주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비글호에 승선했을 때 매우 감명깊게 읽은 책이, 다름아닌 동일과정설을 주장한 라이엘(Charles Lyell)의 ‘지질학의 원리(1833)’ 였으며(d), 그 책에서 제시하는 ‘오랜 지구’ 라는 개념을 자신도 수용하게 되었고, 따라서 ‘생물의 진화도 이처럼 오랜 시간이 허용된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생물진화이론’을 구상하게 된다.

당시의 여러 저명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지질학적인 ‘오랜 지구의 해석’ 추세 (즉, 가정에 근거한 주관적 세계관)를 수용하여 성경과의 타협을 시도하였듯이, 한때 신학도였던 다윈 또한, 이러한 하나의 가설을 자신의 이론에 수용하는 과오를 되풀이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오들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오랜 지구설’에대한 이론들은, 실험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초기 과거 정보가 관측될 수 없기에), 단순한 가정에 불과한 주관적인 해석방식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그 이후로 실험과학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기원과 관련하여 얻어지는 수많은 증거 자료들과 발견되는 결과들은, 하나님의 창조를 더욱 분명히 증거하고 있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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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e New Answers Book 2, edited by Ken Ham. (Chapter 11. Where did the idea of “Millions of years” come from? – Dr. Terry Mortenson), Master Books, 2008.
(b) 위대한 창조과학자 니콜라스 스테노(Great Creation Scientists: Nicolas Steno- Ann Lamont)-한국창조과학회(http://www.kacr.or.kr/)
(c) 창조주 하나님(창세기 1장 vs 진화론)-이재만 저. 두란노, 2014.
(d) Http://creation.com/darwin-and-lyell (2009) by Dominic Stat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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